자욱한 사랑 [김혜순] 자욱한 사랑 세상에! 네 몸 속에 이토록 자욱한 눈보라! 헤집고 갈 수가 없구나 누가 가르쳐주었니? 눈송이처럼 스치는 손길 하나만으로 남의 가슴에 이토록 뜨거운 낙인 찍는 법을 세상에! 돌림병처럼 자욱한 눈보라! 이 병 걸리지 않고는 네 몸을 건너갈 수가 없겠구나 갓 세상에 태어난 어린 새들이 .. LOVEPOEM 2005.08.28
아주 옛날에 [김영태] 아주 옛날에 네가 없으니 춥다 (소지품들을 봉투에 담든다) 조막손이 쉬고 가던 유방도 담는다 어머니보다 거기 따뜻한 품이 있었다 아주 옛날에...... - 김영태, '그늘 반근'(242)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 LOVEPOEM 2005.08.28
마른 물고기처럼 [나희덕] 마른 물고기처럼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 LOVEPOEM 2005.08.24
유언을 읽으며 [김점용] * 유언을 읽으며 - 꿈 25 * 한 여자가 유언을 남긴다 유언을 읽으며 보니 잘 개켜 접은 분홍 수건 밑에 물고기 한 마리가 죽어 있다그 물고기를 들어내니 또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두 마리 모두 장조림이 된 것처럼 검게 부패했다 한 남자에 대한 절망이또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면또 다른.. LOVEPOEM 2005.08.20
할미꽃 [정병근] 할미꽃 땡볕 속으로 너를 데리고 갔다 너의 생식기에 넣었다 뺀 꽃잎을 코끝에 갖다댔다 매독처럼 머리카팍이 뭉텅뭉텅 뽑혔다 뽑힌 머리카락을 뭉쳐 손바닥으로 비볐다 까만 씨앗들이 둥근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왔다 하늘을 쳐다보지 마라 눈뜨지 마라 생각도 하지 마라 자주색 비로드 치마를 털며 .. LOVEPOEM 2005.08.15
수평선 1 [김형영] 수평선 1 하늘과 바다가 內通하더니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구나 나 이제 어디서 널 그리워하지 - 김형영, '낮은 수평선'(292) 중에서 LOVEPOEM 2005.08.15
46 빈 손 [성기완] 46 빈 손 당신을 원하지 않기로 한 바로 그 순간 나는 떠돌이 가 돼 그것을 놓았는데 다른 무얼 원할까 그 무엇도 가지기가 싫은 나는 빈 손, 잊자 잊자 혀를 깨물며 눈 을 감고 돌아눕기를 밥먹듯, 벌집처럼 조밀하던 기억 의 격자는 끝내 허물어져 뜬구름, 이것이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긴 한데 다시 .. LOVEPOEM 2005.08.02
마라도 바다국화 [최두석] 마라도 바다국화 뿌리로 검은 바위 끌어안고 난바다 거센 파도 소리 삼키며 모진 바람에 고개 숙여 잔디처럼 바닥을 기다가도 꽃만은 그윽이 푸른 가을 하늘 마주 보며 피우누나 내가 아는 눈빛 맑은 여인 세상살이 온통 허무해져 바다에 몸 던지러 왔다가 바다국화 꽃 피우는 모습 보고는 마음 다잡.. LOVEPOEM 2005.08.02
어제 [진은영] 어제 나는 너를 잊었다, 태양이 너무 빛났다 내 집 유리창 녹아버린다, 벽들이 흘러내리고 시간의 계곡으로 나는 내려가고 싶다 어릴 적에는 어제를 데려다 키우고 싶었다 오 귀여운 강아지, 강아지들, 내 가 굶겨 죽인 수백만 마리 강철 종이의 포클레인으로 어제의 거대한 공동묘지를 뒤집을까? 오늘.. LOVEPOEM 2005.07.30
첫사랑 [차창룡] 첫사랑 안개 속에서 부들솜 같은 안개의 입자를 만진다 다시 첫경험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이 살그래 바다로 흘러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들어 있던 파도에서 피어나는 꽃숭어리 다시 안개가 덮어준다 안개에 밀려 안개가 걷힌다 - 차창룡, '나무 물고기'(267)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 LOVEPOEM 200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