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POEM

자욱한 사랑 [김혜순]

초록여신 2005. 8. 28. 09:12

 

자욱한 사랑

 

 

 

 

 

 

 

 

 

 

 

 

 

 

세상에! 네 몸 속에 이토록 자욱한 눈보라!

헤집고 갈 수가 없구나

누가 가르쳐주었니?

눈송이처럼 스치는 손길 하나만으로

남의 가슴에 이토록 뜨거운 낙인 찍는 법을

세상에! 돌림병처럼 자욱한 눈보라!

이 병 걸리지 않고는 네 몸을 건너갈 수가 없겠구나

 

갓 세상에 태어난 어린 새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와 털갈이라도 하고 갔니?

어린 시절 뜬금없이 재발하던 결핵이라도 도졌니?

몸 속이 너무 자욱해

내 발등 위로 쌓이는 눈송이들

이 세상 시간 밖으로 쫓겨난 건 아니니?

 

네가 태어나기 먼먼 옛날부터

뜨거운 손길로 아가의 심정을 만들어오시는 그분이

아무도 몰래 넣어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주머니

그 별이 터져서 네 몸 속에서 쏟아지고 있는가 봐

이제부터 이 별은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는 거야

 

모든 삶의 밑바닥에는 끔찍하게 무겁고, 끔찍하게

힘들고, 끔찍하게 뜨거운 것 있잖아?

그 뭉쳐진 것이 터지는 날

세상에! 눈보라처럼 흐느끼는 바이러스 같은 것!

나 어떻게 이 숨찬 눈보라 건너가지?

사랑은 사랑이 있는 곳에서 가장 많이 모자란다는 데

 

 

 

 

 

 

 

- 김혜순, ' 달력 공장장님 보세요'(243)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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