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 보였다 [최문자] 쓸쓸해 보였다 ㅡ 진해, 도미의 무덤 앞에서 도미의 밋밋한 무덤 앞에 섰다. 결국은 무덤뿐일 이 쓸쓸함인 걸 가끔, 흘린 듯 육체를 걸고 싸울 때가 있다. 두 눈을 사랑에 절여넣은 도미처럼. 갈대숲을 휘감았던 그때 그 영혼의 피리 소리 막 들리는 듯하다. 삘리리 릴리이- 지어미 그물코에 걸리라고 미.. 문학동네. ILOVE 진해 2010.04.01
꽃놀이 간다 [장옥관] 파꽃 터지듯 객쩍은 농담 한마디에도 벌어진 검은 잇몸 아물어지지 않아 낮술 몇 잔에 불콰해진 차창 속으로 꽃비는 얼굴을 때리고 진해 장복산 힘겨운 봄날을 낡은 전세 관광버스가 기어오른다 비탈진 인생 불어터진 면발처럼 노랫가락은 늘어지고 구를 때마다 발장단 손장단 떪은 생감의 목젓이 저.. 문학동네. ILOVE 진해 2010.04.01
벚꽃 편지 [이문재] 꽃만 보고 갑니다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듯 서둘러 와서 꽃그늘 아래 잠깐 차를 세웠다가 꽃을 만발한 줄기와 나무는 보지 않고 땅 속으로 수천 수만의 꽃망울을 틔우고 있는 나무뿌리는 궁금해하지 않고 부르릉 두고 온 것이 있다는 듯 또 떠나들 갑니다 꽃만 보고 가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흐드러.. 문학동네. ILOVE 진해 2010.04.01
나는 가끔 진해(鎭海)로 간다 … 송수권 나는 가끔 봄이 오기 전에 진해에 간다 진해(鎭海)를 진해(鎭咳)로 발음하며 십여 년 고질병으로 붙들고 사는 해수 기침을 끄러. 내 가는 길이 팍팍하고 주저앚고 싶은 날에도 진해에 간다 남해 쪽물이 제일 먼저 앞섬 첨탑머리를 물들이거나 거북선 모형의 배가 거북이처럼 앞발을 들고 먼 바다를 내.. 문학동네. ILOVE 진해 2010.04.01
벚나무 사관학교 [손택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은 봄이 오면 벚나무 아래서 기합을 받는다고 한다 벚꽃아 벚꽃아 어여 펴라 진해 벚꽃제 코앞인데 왜 소식이 없느냐 벚나무 아래서 웃통 벗어젖힌 채 연병장 구보를 하고, 군가를 부르고 악악 악으로 깡으로 후끈거리는 열기를 고스란히 나무에게 전해준다고 한다 그 열기에 달.. 문학동네. ILOVE 진해 2010.04.01
섬이 된 사람 [이규리] 진해! 라고 말하면 우윳빛 속치마 끝단에 레이스가 날리는 듯하다 문을 열고 자꾸 바깥으로 향하는 내 안의 질서가 환한 등불 켠 저 꽃잎 탓, 내가 한 사람을 만나러 진해에 갔을 때 진해는 사람 대신 동동 뜬 삼각형의 섬 하날 내어놓았다 섬이 된 사람 짧은 악수 속에 구겨넣었던 꽃잎의 부피를 그는 .. 문학동네. ILOVE 진해 2010.03.31
진해에서 [김석규] 긴 굴을 빠져나가면 금방 꽃그늘이다. 진해는 한반도의 예쁜 진주알 오랜 세월 잔잔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선 장복산이 따뜻하게 한 자락을 펼쳐놓고 그 오지랖에다 바다를 불러서 포개고 있다. 진해에 꽃이 피기 전에는 아직 봄이 아니다. 나라 안 모든 벚나무들의 개화를 통제하는 사령탑 서둘러 .. 문학동네. ILOVE 진해 2006.04.11
行岩가는 길 ....... 김병수 月下에서 月下가 걷던 길도 이 길이었을 것이다. 별이 부서져내리는 파도는 모서리를 바라보면서 당신의 행랑에 채우지 못한 알 수 없는 것들이 모두 空이었다고 자신 있게 일러두었을 것이다. 벚꽃이 피어날 때 짓던 미소가 낙화의 서글픈 이별 앞에서는 슬그미 돌아서서 홀로 행암 가는 길을 따라 .. 문학동네. ILOVE 진해 2006.04.11
1995 봄, 진해로 오다 [김명순] 저녁 햇살 잔그림자에 수줍은 볼을 붉히곤 살포시 돌아앉은 장복산. 뽀-얀 설레임......으로 찾아든 아직 낯설은 사람들의 도시 해마다 4월이면 세월의 결을 따라 먼지 내려앉은 낡은, TV 화면을 화사하게 채색하던 군항제. 연분홍 꽃잎의 수줍은 흩날림은 저도 몰래 언쯧 불거져나오는 푸른 그리움을 뜨.. 문학동네. ILOVE 진해 2006.04.09
안민 언덕에서 [김교한] 거친 바람 다스려온 빛 맑은 아침 바다. 새들도 흔들리지 않는 나뭇가지에 앉듯이 잔잔히 물결이 치는 마음 한 자락 여기 포갠다. 하늘 깨칠 소리 감춰 꿈틀거린 푸른 산맥 실안개 희끗희끗 미명(未明)의 숲을 열고 사계절 풋내들 두른 기상도 한결 높아. 평온한 바다의 성이 속 깊이 눈뜨고 있다. 언제.. 문학동네. ILOVE 진해 200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