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이성복]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사랑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목 좁은 꽃병에 간신히 끼여 들어온 꽃대궁이 바닥의 퀘퀘한 냄새 속에 시들어가고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있다 -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275)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 LOVEPOEM 2005.07.24
공기의 꿈 [이찬] 공기의 꿈 저 부유하는 무허가의 땅 공중을 출렁이는 마음의 눈들 웃음 주고받긴 켜켜이 쌓인 먼지 구름 먹구름 먹장구름 그 운명적 사랑으로 비를 만들고 싶다 눈을 낳고 싶다 - 이찬, '발아래 비의 눈들이 모여 나를 씻을 수 있다면'(274)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 LOVEPOEM 2005.07.24
반초도 안 되는 순간 [이윤학] 반초도 안 되는 순간 반초도 안 되는 순간, 어떤 벽에 뚫린 구멍은 이 세상의 비극을 다 보여주었네 반초도 안 되는 순간, 어떤 벽에 뚫린 구멍은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네 그녀가 돌아올 때마다 그녀가 돌아갈 때마다 그에게는 구멍이 하나 안에서 밖으로 뚫어졌네 이 세상이 쉬 망하지 않는 이유 한없.. LOVEPOEM 2005.07.24
세기말 이별 [최영철] 세기말 이별 이별을 그렇게 하면 쓰나 바짓가랑이 붙들고 지리멸멸 구구절절 남은 정 다 달아나게 저 세기말 사랑 좀 봐 저만치 가버린 너를 붙잡으면 뭘 해 벽 한 번 쿵 치고 손 한 번 터는 그 새 밀레니엄 손잡고 졸망졸망 가는 그 시작도 끝도 경쾌해서 좋아 좋아 얼마나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데 절.. LOVEPOEM 2005.07.23
쨍한 사랑 노래 [황동규] 쨍한 사랑 노래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 LOVEPOEM 2005.07.23
사랑은 [채호기] 사랑은 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 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LOVEPOEM 2005.07.23
빗방울을 흩다 [박태일] 빗방울을 흩다 그녀 웃자 그녀 쪽 유리잔이 떨렸다 그녀 고개 들자 내 잔 속 물이 떨었다 그녀와 나는 남남으로 남는다 낮 두 시 찻집 베트남 그녀와 나는 할 말이 없다 창밖 인조 대숲에선 빗발이 글썽거리고 그녀 낮은 콧등처럼 그녀 외로움도 저랬을까 그녀를 두고 간 옛 남자의 반지 자국이 그녀 짧.. LOVEPOEM 2005.07.23
비밀 [김명인] 비밀 나를 기다리는 우연 하나 이미 지나쳤으니 네가 와서 들추면 지워진 자취, 그게 비밀이라고요? 그렇다면, 들쭉 그늘 색칠하다 환한 잠드는 바람 해바라기 검은 씨앗 속 햇살 구름 눈꺼풀이 덮고 지나는 날 빛 푸름 물곬의 섶 뒤지다 심심해지는 밀물 어스름 수평 아래로 막 잠기는 일몰의 행방 들.. LOVEPOEM 2005.07.23
그녀 [배용제] 거리에서 한 여자가 스쳐간다불현듯 아주 낯익은, 뒤돌아본다그녀는 나와 상관없는 거리로 멀어진다도무지 생각나지 않는,철 지난 외투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처럼 그녀는 기억의 지느러미를 흔들고 거슬러 오르면전생의 내 누이,그보다 몇 겁 전생에서나는 작은 바위였고 그녀는 귀퉁이로 .. LOVEPOEM 2005.07.19
마음에 대한 보고서 8 [박찬일] 마음에 대한 보고서 8 나는 가끔, 내 그것을 물려는 느낌을 받는다 뼈가 유연하면 몸을 둥글게 굽혀 그것을 물 수가 있다고 생 각한다 혼자 살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게 전부는 아 니지만 틀림없이 덜 외로웠을 텐데 여자 앞에서 주눅 안 들었을 텐데 생각한다 여자를 남자처럼 그러니까 여자를 인간처.. LOVEPOEM 200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