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를 선정하고 나서
시를 읽은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는 자조 섞인 힐난이 들린다. 그러나 읽지도 쓰지도 않는 것보다 나쁠 수는 없다. 시를 읽는 사람이 잠재적인 시인이라면, 시를 쓰는 사람은 잠재적인 독자다. 창작과 독서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힘쓰면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좋은 시'가 더 좋아지도록 다같이 응원하는 일이다. 합당하기만 하다면 좋은 시를 평가하는 기준은 높을수록 좋다. 예술은 우리가 밑에 깔아놓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동경하면서 따라잡는 것이어야 한다. 반성하게 하는 것이어야 하고 새로 태어나게 하는 힘이어야 한다. 반성과 갱신은 낯선 것들과 접속할 때 가능해진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되길 바란다. 이 책에 더러 읽기 까다로운 시들이 있지만 그것은 그런 의미에서 불가피한 일이고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장점에 가깝다.
2008년 6월부터 2009년 5월까지 1년여 동안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좋은 시를 선별했다. 주요 월간지 및 계간지들을 망라해 읽고 세 사람의 선정위원이 각각 수십 편에 달하는 작품들을 골라냈다. 각자의 미학적 기준에 따라 작품들을 선정했고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특정 세대와 성향에 편중되지 않은 추천작 목록이 만들어졌다. 이를 놓고 다시 세 사람이 오랜 시간 토론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책을 만들었다. 가급적이면 개인 시집이나 기타 앤솔러지에 묶인 적이 없는 작품들을 수록해서 독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려고 했다. 마침 신작 시집을 최근에 출간한 몇몇 뛰어난 시인들의 작품이 누락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점이 아쉽긴 하나, 이만하면 지난 1년간 한국시가 만들어낸 진품들이 잘 갈무리된 것이라고 믿는다.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을 옮긴다. "다음 여덟 가지가 사랑의 결과이다. 사랑은 심장을 빨리 튀게 하고, 고통을 진정시키고, 죽음을 떼어놓고, 사랑과 관련되지 않는 관계들을 해제하고, 낮을 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은 정열적인 사랑의 효과이다.." (『은밀한 생』) 시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게 바꿔 적을 수 있다. "다음 여덟 가지가 좋은 시의 결과이다. 좋은 시는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하고, 죽음과 들러붙게 하고, 권위적이고 관습적인 언어들을 해제하고, 낯섦을 증가시키고, 익숙함을 단축시키며, 영혼의 비밀을 소중하게 만들고, 모국어를 빛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은 좋은 시의 효과이다.." 어찌 여덟 가지뿐이겠는가. 이 책이 그 증거다.
2009년 7월
선정위원 김사인. 이혜원. 신형철
* 현장비평가가 뽑은 2009 올해의 좋은 시 / 현대문학, 200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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