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울과 시계를 주관하는 악마입니다.
내 이름은 당신의 나이와 상관이 있죠.
거울은 음모를 계획하는 미궁이고
시계는 음모를 실행하는 형틀이죠.
은닉과 폭로, 그것이 내가 하는 소임입니다.
내게는 당신을 소멸시키는 능력이 있죠.
이리 와서 거울을 봐요.
내 거울 속에는 당신과 나의 유골이 들어 있어요.
당신이 나를 잊어버리지 않았던 시절의.
당신의 고질병이 점점 심해질수록
비참하게 자란 당신의 건축 기사는
당신의 갈비를 따라 내려와 찬란한 죽음의 건물을 축조하죠.
나이를 먹은 당신이 나의 이름을 흩날려요.
우리는 모래알처럼 반짝거리고 거울은 밀림처럼 울창해요.
이리 와서 시계를 봐요.
내 시계 속에는 당신과 나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어요.
당신이 막막한 사막 위에서 나의 이름을 주워 모을 시절의.
당신의 고질병이 새로운 병균을 수집할수록
비굴하게 자라는 당신의 제사장은
당신의 근육을 타고 올라가 황홀한 재생의 주문을 외우죠.
나이를 잊은 당신이 나의 이름을 조합해요.
사막은 신기루처럼 울창하고 우리는 나뭇잎처럼 반짝거리죠.
우리는 당신의 건망증과 과대망상증이 끄는
수레를 타고 가는 초능력자들.
야자수가 자라는 오아시스에서 집도 짓고
교미하면서 끝없는 상상임신을 즐겨요.
그대여, 이리 와서 이 눈을 봐요.
잊어요, 그리고 꿈꿔요.
당신의 나이는 내 이름과 상관이 없죠.
이 눈 속에서
울어요, 그리고 웃어요.
나는 거울과 시계를 보관하는 천사.
내게는 당신을 건설하는 능력이 있죠.
* 나는 맛있다, 랜덤하우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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