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검은 립스틱을 바르는 남자 [박장호]

초록여신 2008. 9. 14. 18:04

 

 

 

 

 

 

 

 

 

 

 

지휘가 시작되면 나의 혀는 불붙어요.

내 입술은 차가운 화염 속에서 파랗게 질려요.

원래는 물의 자식이었어요.

지금은 금속의 양자랍니다.

태생이 생활을 녹슬게 해요.

살아서는 흐를 수 없다는 걸 부인하는 동안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어요.

당신의 싱싱한 지휘봉은

선풍기처럼 쉬지 않고 바람을 일으켜요.

나의 혀는 당신의 바람을 맞고 꽁꽁 타올라요.

타오르는 것만이 내가 가진 적색의 전부라구요.

색맹이 아니라 내 눈은 꿈속에 있어요.

피아노는 죽음의 전주

바이올린 활들이 소리의 동맥을 그어요.

다른 운명 다른 수명의 소리들이 죽음으로 만나요.

스틱은 소리의 심장을 터뜨려요.

피크는 소리의 늑골을 잘라요.

살해되는 소리들, 사후 세계는 아름다워요.

약 먹은 게 아니에요

내 귀는 저승에 있어요.

소리의 천국인 죽음 안에서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살해자

나는 당신의 악보대로 말을 잃을 거예요.

 

 

 

 

* 나는 맛있다 / 랜덤하우스, 2008.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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