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허공 [고은]

초록여신 2008. 9. 13. 11:57

 

 

 

 

 

 

 

 

 

 

 

누구 때려죽이고 싶거든 때려죽여 살점 뜯어먹고 싶거든

그 징그러운 미움 다하여

한자락 구름이다가

자취없어진

거기

허공 하나 둘

보게

어느날 죽은 아기로 호젓하거든

또 어느날

남의 잔치에서 돌아오는 길

괜히 서럽거든

보게

뒤란에 소리 죽여 울던 어린시절의 누나

내내 그립거든

보게

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 지나왔거든

보게

찬물 한모금 마시고 나서

보게

그대 오늘 막장떨이 장사 엔간히 손해보았거든

보게

백 미만 도(道) 따위 통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게

 

 

거기 그 허공만한 데 어디 있을까보냐

 

 

 

 

 

* 허공(세계적인 시인 고은 등단 50주년 기념 신작시집) / 창비, 2008. 9. 10.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은 립스틱을 바르는 남자 [박장호]  (0) 2008.09.14
추석 [신경림]  (0) 2008.09.14
세수 [이선영]  (0) 2008.09.13
별의 여자들 [김선우]  (0) 2008.09.13
여자 [정현종]  (0) 2008.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