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을 주세요. 내 복장과 머리모양에 어울리도록 내게 What을 주세요. 내가 만든 눈 속의 거인이 눈 밖으로 걸어 나와 신경을 휘젓고 있어요. 내 신경이 몸 밖에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있도록 What을 주세요. 내게 What을 주세요. 구멍 뚫린 혓바닥이 새살로 막혀 가고 있어요. 꽉 막힌 나의 말을 밑도 끝도 없이 뚫고 싶어요. 가청권을 벗어나는 소리를 포크로 찍어 먹지요. 귀가 된 치아에 돋보기를 댄 채 나의 딱딱한 냄새를 맡지요. 추상적인 쾌락의 손이 나의 얼굴을 더듬어요. 구체적인 공포의 손이 나의 표정을 일으켜요. 길쭉해진 코가 말해요. 고개를 돌리고 싶어요. 마음껏 고개 돌릴 수 있도록 What을 주세요. 나는 이미 망가졌어요. 내 이목구비는 미궁에 빠진 고장난 장난감이에요. 태엽은 돌고 나는 춤추고 공중엔 새파란 신경들이 촘촘하게 엉켜 있어요. 신경과 분리된 나의 절망적인 율동을 내가 느낄 수 없도록 What을 주세요. 나를 조작하는 모든 감각의 대상들을 내가 배신할 수 있도록 내게 What을 주세요. 표정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언제든지 찢어 버릴 수 있는 말끔한 백지가 되도록.
* 나는 맛있다, 랜덤하우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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