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황소다.
한 시간의 연습을 두고
당신은 소 한 마리 잡는 거라 했다.
오늘은 다섯 시간 정도 붙들어 앉았으니
대여섯 마리쯤 너끈한 셈인가?
사실 난, 건반 두드리는 게
그렇게 힘 부치는 일인 줄 몰랐다.
그것을 다루는 그대의 몸짓이
순하게 보였기에
그런데다 내는 소리도 고운 것이
그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감히 소를 잡는 줄 짐작할 겨를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새삼 주의 기울여보니
과연 그것은
등판이 딱 벌어진 검은 황소다.
흰 이를 드러낸 채 씩씩대는 거대한 황소.
당신은 이제 막
아, 살며시 눈 감은 채
그 놈의 정수리를 향해 칼을 세우고 있다.
* 귀한 매혹, 문학과지성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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