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다시 애월에서 [양진건]

초록여신 2008. 8. 15. 12:16

 

 

 

 

 

 

 

 

 

 

애월 바다는 컨테이너 곁에서

한구석이 조금씩 부서진 채

녹슬고 있었습니다.

배들은 또 다른 연안으로 떠났는지

방파제 한켠에 무릎 조아리고 있는

한 사내의 축축한 낮잠만 눈에 선합니다.

가끔 자책하며 환멸을 찾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나를 무너뜨리며

애월을 들여다보지만

음습한 술기운 때문인지

바다는 늘 들끓고 있었습니다.

환멸은 증오인지 용서인지,

바람 거친 등대 곁에 서면

모두가 깊은 살의를 지닐 법도 하지만

나는 이미 애타면서 혼수상태인 채

늘 죽음 직전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당신의 싸움 소리도 요란할 텐데

오늘 애월은 환히 고요합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을 무너뜨리며

어디에 계십니까.

 

 

 

 

 

 

* 귀한 매혹,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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