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속에는 또 하나의 당신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은 당신의 몸을 안으로 단단히 당겨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손톱은 안쪽으로 동그랗
게 말려들고, 당신의 귓바퀴 또한 당신의 몸속으로 소
용돌이치며 빨려들고 있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이 당신
을 당겨 잡은 그 손을 놓는 순간 당신은 아마 이 세상
에 없을 겁니다
당신의 얼굴은 당신 속의 당신이 당신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모습 그래로 굳어져 있습니다 가끔 그 얼
굴이 당신 밖의 내 얼굴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당신의
두 눈동자 속에서 나를 내다보는 당신 속의 당신을 내
가 느끼기도 하지만 당신 속의 당신이 당신을 당겨 잡
은 그 손을 놓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팽팽히 당겨져 있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그 긴장을 견
디느라 이제 주름이 깊습니다
당신 속의 당신은 또 얼마나 힘이 센지 내 속의 내
가 당신 속으로 끌려 들어갈 지경입니다
당신은 지금 붉은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치즈를 손
에 들었습니다
내 속의 나는, 치즈는 우유로 만들어졌다는 걸 상기
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 우유는 어느 암소 속의
암소가 내뿜은 걸까 고민합니다
혹 당신이 멀리 떠나 있어도 당신 속의 당신은 여기
에 또 있습니다 나는 당신 속의 당신을 돌려보내지도,
피하지도 못합니다
아마 나는 부재자의 인질인가 봅니다
내 속의 내가 단단히 나를 당겨 잡고 있는 동안 나
또한 살아 있을 테지만 심지어 나는 매일 아침 내 속
의 나로 만든 치즈를 당신의 식탁 위에 봉헌하고 싶어
집니다
- 김혜순, '한 잔의 붉은 거울'(288)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
'LOVE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留別 2 ....... 복거일 (0) | 2005.10.10 |
---|---|
46 빈 손 [성기완] (0) | 2005.09.17 |
無人島 ....... 박주택 (0) | 2005.09.17 |
가까스로 당신 안에서 [이태수] (0) | 2005.09.10 |
휘어진 길 [이윤학] (0) | 2005.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