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당신 안에서
자그마한 풀꽃 한 송이 들여다보아도
부끄럽습니다. 이른 아침, 꽃잎에 맺혀
둥글게 글썽이며 햇살을 되비추는 물방울,
그 작디작지만 맑고 투명한 글썽임이
더욱 부끄럽게 만듭니다. 나는 가까스로
들숨 날숨, 당신 안에서 이마를 조아립니다.
한때는 날아오르는 꿈을 꿨습니다. 그 꿈속에
사닥다리를 놓고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닥다리 끝에서는 다시 내려와야 했고
날아오르려 할수록 깊이 떨어져내렸습니다.
그 다음의 길은 내겨가기였습니다.
더 내릴 수 없을 때까지 내려가고, 심지어
깊은 물 속에 나만의 집을 짓고 방을 만들어
아득하게 푸른 창을 내려고도 했습니다.
또 한때는 올라가다 내려가고, 내려가다가는
오르는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올라가려 해도,
아무리 내려가보아도, 길은 안 보였습니다.
길은 있어도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 낮추고
오직 당신 안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한 송이 풀꽃이 피워 올리는 생명의 불꽃,
그 언저리에서 둥글게 글썽이는 물방울의
햇살 되비추기에도 얼마나 눈물겨운지,
얼마나 넉넉한 당신 품 안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 이태수,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8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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