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빈 방 [박세현]

초록여신 2011. 12. 19. 23:33

 

 

 

 

 

 

 

 

 

 

 

 

집을 오래 비웠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는 손가락이

자중지란으로 부산스럽다

비어 있던 방 안이 남의 살림만 같다

나 없는 사이에 누군가 살다 갔을까?

전등도 몇 번 켜졌다 꺼진 것 같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온 햇살무늬에는

방의 비밀번호가 찍혀 있다

타다 만 향 끝에 남은 재가

제 온기를 품느라 바스랑대는 방에

누군가, 제 집인 듯 시침 떼고

일 년 내내 벽에 걸린 달력 속

티베트 소녀의 눈에도 들키지 않고

나 대신 며칠 살다간 심신한 흔적

설마, 나 없는 사이에 내가?

 

 

 

 

* 본의 아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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