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겨울 선자(扇子) ……· 유종인

초록여신 2011. 12. 19. 23:24

 

겨울 선자(扇子)

ㅡ자화상

 

 

 

 

 

 

 

 

 

 

 

오금을 펼 운(韻)을 띄우시게

오지랖은

상하(常夏)의 영혼에서만 왔단 말 거두게나

 

 

눈부시다 드맑다 훤하다

이 모두에 손때를 묻혀보는 일

내 생활이라면 좀 어떻겠나

칸칸이 접히고 좁히고 포개 얹었다

삽시간에 조갈 들린 강호(江湖)를 펼쳐,

근심이 잠든 얼굴에

명지바람을 들이게나

 

 

켜켜이 시간이 접힌 듯

옛일이 오롯해질 그 순간

천추(千秋)에 접혀 있는

작은 폭포와 거룻배와 초가와 물동이 인 여인 곁의

삽살개와 늙은 어부 낚싯대에 물린 샛강과

이 모두를 슬몃 끌어안다 놓친 듯 다시 안는 산 둘레와

거기 미처 들이지 못한

정혁(鼎革)*의 소쩍새 소리도 털어 나오는 활개,

살아 있는 옛날인 듯

옛날이라도 바람을 숨긴

생색(生色)이

맞불어오는 여기 옛날인 듯

 

 

이건 홀로 부쳐도

만상(萬象)의 당신이 깨어날

겨울날 소복(素服)을 들추는 손길처럼

겨울날 소복을 어르는 음심(淫心)처럼

나여, 손 떨리는 나여

 

 

이 정신의 수전(手顫)은

당신이 주셨는가

 

 

* 나라의 솥을 바꿈, 혁명.

 

 

 

시집『사랑이라는 재촉들』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인펜 [유종인]  (0) 2011.12.28
빈 방 [박세현]  (0) 2011.12.19
칵테일파티 [신미균]  (0) 2011.12.18
억새 틈에서 [박세현]  (0) 2011.12.18
개복숭아나무의 저녁 [유종인]  (0) 201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