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섬말 시편 ㅡ 꽃눈 [김신용]

초록여신 2011. 5. 12. 11:14

 

섬말 시편

ㅡ꽃눈

 

 

 

 

 

 

 

 

 

 

 내가 하나의 가지를 자르는 일은, 나무에 바람과 햇빛을 잘 들게 하기 위함이겠으나

 바람과 햇빛을 불러들여,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겠으나

 오늘, 잘린 가지를 꽃병에 꽂아주는 저 마음을 얻겠네

 비록 가을을 잃은 꽃이지만, 먼 遠雷처럼, 지층에 묻힌 화석처럼 열매를 놓아버린 것이지만

 거실의 창가에, 햇빛 환한 탁자 위에 놓아두는, 그 마음을 얻었네

 열매의 좋은 과육과 빛깔을 위해 煎枝는 필요한 것이지만

 나무 스스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말려 떨어트리지만

 겨우내 키워 올린 가지는, 더 많은 꽃과 열매를 얻기 위한 나무의 열망 같은 것이어서

 나는 전지가위를 들기도 전에 사람과 나무 사이의 불화를 예감하지만

 지우고 버리므로서 윤곽을 드러내는 수묵의 圖上이거나

 단순한 禪的 구도의 선을 상상한 듯이, 내 전지가위가 지나간 자리

 언제나 텅 빈 여백만이 먹물 번지듯 스며나와, 그리하여

 내 무관심의 시선이 차가운 물처럼 스쳐간 것 같을 때

 잘린 가지마다 맺힌 꽃눈이 아까워 한 웅큼 모아들고, 가만히 꽃병에 꽂아주는, 그 마음의 꽃눈을 얻겠네

 나무와 나무 사이, 가지와 나 사이, 그 휑한 空洞을 드나드는 바람과 햇빛이 쓸쓸해 보일 때

 도화빛 꽃의 방을 밝히던 나무의 물관부도 끊겨

 이제 막 움트려는 잎들마저 아무 의미 없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을 때

 그 여백을 메울, 저 꽃들의 망치질을 깨워

 그 빈 공간을 초록 화폐로 바꿀 눈들을 깨워

 

 

 

* 바자울에 기대다 / 천년의 시작, 2011. 3. 30.

 

‥…

내 무관심의 시선이 차가운 물처럼 스쳐간 것 같을 때

그때가 관심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 쓸쓸한 여백의 빈 공간을 관심과 사랑으로 바뀌어 아름다운 '꽃눈'이 피어났으면 합니다.

(그 '꽃눈'의 만남을 기대하며,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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