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청거북이 사는 집 [김지유]

초록여신 2011. 5. 12. 11:22

 

 

 

 

 

 

 

 

 

 이 집의 공기는 다르다, 바람의 길이지만 바람은 바닥으로 새어 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한 채 뒤집어진 신발 속에 갇힌다

 

 

 욕조에 사는 청거북은 움직임이 없다

 

 

 절인 배추처럼 의자에 걸쳐진 옷들이 제 무게를 못 견디고 주저앉는 일들로 빈 공간이 사라져 가고 있을 뿐

 

 

 종일 갇혀있던 바람이 숨을 쉬는 시간은 자정 넘어 들어온 여자가 텔레비전을 켜고 욕실로 들어가 짙은 화장을 지울 때, 청거북도 튀는 물방울에 머리를 내밀지만 한 달이 넘게 먹이는 던져지지 않는다

 

 

 이끼 가득한 곳에서 끈질기게 쉬는 숨으로 여자의 한숨까지 견뎌내야 한다

 

 

 숨을 막는, 이곳의 공기는 다르다 비디오를 보고 추리소설을 읽다 잠든 여자는 거북에게 제 살점을 뜯기는 꿈을 꾼다 여자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구두를 구겨 신은 채 집을 빠져 나간다

 

 

 뭉쳐진 이불 무덤 속으로 바람이 다시 갇힌다 베란다에 널린 빨래가 바래가는 동안 립스틱이 닳아갈 뿐 묵은 쌀도 고추장도 청거북도 말라만 가는

 

 

 이 집은, 바람의 통로다

 

 

 

* 액션페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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