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잠자는 남자 [류인서]

초록여신 2010. 5. 16. 07:28

 

 

 

 

 

 

 

 

 

 

 

 

그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바람에 한번 뺨을 맞아보려 한다

심술궂은 놀부네 나무주걱 같은 바람이

따악, 하고 후려친 얼얼한 뺨에 돋는 밥풀 같은 별을 볼 수 있다면

 

 

그는 가슴에 새도 한번 길러보려 한다

새모이로 공깃돌만한 밥을 입에 밀어넣고서

오랜 실업의 증거인, 늑골 아래 녹물 소리처럼 흐르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오랜 생각 끝에 그는 직업적인 침대가 되기로 결심했다

유일한 일거리인 잠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느려터진 달팽이시간이 귓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침대

어쩌다 밖에서 사람들 눈에 뛸 때면, 아파트 옆 공터에서 반으로 접힌 채 노숙하는 침대

비를 피하기 위해 느티나무 옆 창고 처마 밑으로 자꾸 등을 들이미는 침대

 

 

 

* 여우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돌 [김명인]  (0) 2010.05.16
천국의 정원 [류인서]  (0) 2010.05.16
지구에서 지구로 걸어가는 동안 [이문재]  (0) 2010.05.12
창(窓) ……· 류인서  (0) 2010.05.08
순결에 대하여 [김명인]  (0) 201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