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사과꽃 그늘에는
같은 악절만 반복하는 망각의 음악회
주자들의 낡은 악기를 달빛 가지에 걸어두면
과일 대신 지잉지잉 울음아기들 열린다네
과즙처럼 흘러내리는 아비 모를 그 울음 솎아내느라 둥둥대는 마음 아가씨들
무성한 초록잎을 들추던 손이
제 얼굴 닮은 과일을 슬쩍 훔쳐가곤 한다네
머리 위엔 형형색색 호기심 많은 구름*
울음소리 그친 정원에는 코끝 지린 박하향 바람이 불고
익은 새알 속에서 찌리링 알람 벨이 울린다네
공중에서는 때맞춰
교미를 마친 수개미들이 만나처럼 쏟아져내린다네
끝없이 거미줄을 삼키는 거미와
수면에 엎드려 코를 고는 발 달린 물뱀들
모든 것 낯설고 모두가 태연한
천국의 역사가 바로 이곳에 있으니
노래는, 그가 태어난 처음의 불꽃 속으로 돌아가
오지 않는다네
나는
붉은 먹물글씨의 부적을 살라 재를 마시고
삼칠일(三七日) 깊은 잠에 들었다 깨어났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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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 장편소설 『내 이름은 빨강』중에서.
*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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