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천국의 정원 [류인서]

초록여신 2010. 5. 16. 07:34

 

 

 

 

 

 

 

 

 

 

 

 

오월 사과꽃 그늘에는

같은 악절만 반복하는 망각의 음악회

주자들의 낡은 악기를 달빛 가지에 걸어두면

과일 대신 지잉지잉 울음아기들 열린다네

과즙처럼 흘러내리는 아비 모를 그 울음 솎아내느라 둥둥대는 마음 아가씨들

무성한 초록잎을 들추던 손이

제 얼굴 닮은 과일을 슬쩍 훔쳐가곤 한다네

머리 위엔 형형색색 호기심 많은 구름*

울음소리 그친 정원에는 코끝 지린 박하향 바람이 불고

익은 새알 속에서 찌리링 알람 벨이 울린다네

 

 

공중에서는 때맞춰

교미를 마친 수개미들이 만나처럼 쏟아져내린다네

끝없이 거미줄을 삼키는 거미와

수면에 엎드려 코를 고는 발 달린 물뱀들

모든 것 낯설고 모두가 태연한

천국의 역사가 바로 이곳에 있으니

노래는, 그가 태어난 처음의 불꽃 속으로 돌아가

오지 않는다네

 

 

나는

붉은 먹물글씨의 부적을 살라 재를 마시고

삼칠일(三七日) 깊은 잠에 들었다 깨어났다네

 

 

 

---------------------------------------------

* 오르한 파묵 장편소설 『내 이름은 빨강』중에서.

 

 

 

* 여우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꽃 못에 갔었네 [이선영]  (0) 2010.05.16
충돌 [김명인]  (0) 2010.05.16
잠자는 남자 [류인서]  (0) 2010.05.16
지구에서 지구로 걸어가는 동안 [이문재]  (0) 2010.05.12
창(窓) ……· 류인서  (0) 201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