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노래주스 [김혜순]

초록여신 2008. 5. 23. 13:08

 

 

 

 

 

 

 

 

 

 

 귀신 때문에 못 살아 남편은 괜찮다지만 나는 못 살아 마루 틈에서 귀신이 올라오면 남편은 귀신 몸을 슥슥 잘도 통과해 다니지만 나는 귀신 피하느라 거실에선 걸어다니지도 못해 거실에 붙은 부엌으로 나가지도 못해

 

 

 神님 神님 이 집에서 나가주세요 아침마다 빌어보지만 식탁이 덜컹 냉장고가 찌르르르 식탁 의자가 벌렁 나는 정말 못 살겠어 방학하니까 더 못 살겠어

 

 

 우리 집엔 스피커가 여섯 개 남편 방에 두 개 딸 방에 두 개 내 방에 두 개 방마다 다른 노래 세 개의 방문은 좀체 열리지 않고 세 개의 방에선 각기 다른 음악

 

 

 수도꼭지귀신 화분관음죽귀신 가스불푸른머리귀신 냉장고얼음귀신 이름없는귀신이름있는귀신 우리엄마날낳은날귀신 나엄마된날귀신 나할머니되었던먼옛날귀신 귀신들의 한숨이 낮잠 든 나를 갉아먹어 이것 좀 봐 이것 좀 읽어봐 내 얼굴에 새겨진 귀신들의 이름

 

 

 다락에 숨겨놓은 애인처럼 달라는 것도 많아 오히려 죽어서 죽음에 굶주린 것들의 이름이 귀신일까 사랑해달라고, 사랑해달라고 관음죽 시퍼런 눈길이 내 머리채를 낚아채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에 굶주린 것들이 귀신일 거야 내 등에 업혀서는 나보고 이 집에서 나가! 그러네 이렇게 무거운 바람은 처음이야 귀신을 업으면 슬픈 음악처럼 내가 흐느껴 내 넓적다리가 흐느끼고 내 어깨가 흐느끼고 내 갈비뼈가 흐느껴 내가 귀신에 업히면 내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와

 

 

 우리 집엔 스피커가 여섯 개 내 스피커에선 귀신의 노래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오는 노래

 

 

 

 

 

* 당신의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