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껍질을 벗겨봐 특히 자주감자 벗겨봐 감자의 살이 금방 보랏빛으로 멍드는 걸 보신 적 있지 속살에 공기가 닿으면 무슨 화학변화가 아니라 공기의 속살이 보랏빛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되실 거야 감자가 온몸으로 가르쳐주지 공기는 늘 온몸이 멍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제일 되게 타박상을 받는 타박상의 一等, 공기의 젖가슴이 가장 심해 그 타박의 소리를 어느 한밤 화성 근처 보통리 저수지에서 들은 적 있어 밤 이슥토록 떼로 내려 앉았다가 무엇의 습격을 받았는지 일시에 하늘로 치솟아 오르던, 세상을 들어올리던 청둥오리떼의 공기, 일만평으로 멍드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 폭탄 터졌어 그밤 그 순간 내 사랑도 일만평으로 멍들었어 그 소리의 힘으로 나 여기까지 왔지 알고 보면 파탄이 힘이야 멍을 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나를 감자 껍질로 한번 벗겨봐 힘에 부치시걸랑 나의 멍을 덜어가셔 보탬이 될 거야 이젠 겁나지 않아 끝내 너를 살해할 수 없도록 나를 접은 공기, 공기는 내 사랑!
* 창작과비평 140호, 2008년 여름호.
.......
1999년 5월 25일. 시사랑이 이 땅(daum)에 보금자리를 잡았습니다. 시사랑이 태어나던 날, 난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지난 세월이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저는 시사랑의 따끈한 품에서 9년을 보냈습니다.
내 과거의 기억이 희미하듯 시사랑의 탄생도 처음엔 미약했을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건대, 10년이란 세월 앞에 엄청난 시인들의 입을 통해 시가 탄생되었고 시들어 갔을 겁니다. 시사랑에 흩뿌려진 시들은 어떻게 보면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네요. 공기없이 하루도 버틸 수 없듯이 [시는 내 사랑]이고 [내 공기]였습니다. 떠나가는 인들의 외면 속에서 파란 멍이 들었고, 금방 깎아 놓아도 자줏빛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감자처럼 그 보랏빛 외면과 차가운 냉대를 감수했지만 우리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 파란 멍을 보탬으로 삼아 오늘 시 앞에 군림할 수 있는 시사랑, 이곳에서만은 여유롭고 편안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시사랑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운영진들의 노고와 회원 하나 하나의 사랑이 공기처럼 사방에 알알이 맺혀 있을 겁니다.
시사랑은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주었던 숱한 상처와 슬픔과 아픔과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었던 손수건이었지요.
일만평 이만평으로 번져갔던 그리움의 크기들. 끝없는 눈물과의 추락.
그 시의 힘으로 나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과감히 외쳐 봅니다. 시는 내 사랑, 내 사랑, 내 사랑이였노라고...
시사랑을 몰랐다면 내 삶은 참 건조했을 것 같아요.
공기처럼 있으면서 없는 듯 없으면서 있는 듯 그런 존재로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기를 기원합니다.
어제 인사동 정모에서 9주년을 미리 축하하며 케�을 자르던 함께 자르던 님들의 고운 손길을, 그 떨림을 오래도록 기억할께요.
9주년. 10살이 된 시사랑의 생일을 많이 축하해 주세요. 공기처럼 축하의 메세지가 번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시의 공기 속에서 오늘 두 배의 즐거움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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