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있는 별은 아주 오래전의 별이지요.
수년 전의 별부터 수만년 전의 별들을 보고 있는 거라며
그는 걸음에 잠깐 쉼표를 찍고
나는 아아아 하품을 한다.
우리가 죽은 후에나 당도하는 별빛의 현재 따위는 산책로 옆으로 치우며
우린 나란히 꼬르륵거리며 걷도 있네.
한번씩 부딪칠 때마다 이미
사라진 눈. 사라진 어둠.
골목 입구에 차린 구름약국의 아이들이 전신주에 걸터앉아 전화선을 물어뜯기 시작하자
너무 멀리 떨어져 빛이 닿지 못하는 별처럼
아스라한 허기로 잠시 이사를 고민할 즈음
그가 문을 열었고, 난 벼룩시장을 접었다.
물컹물컹 천체망원경으로 짓무른 그의 눈알에 연고를 다 발랐을 때
그가 손짓한 지상으로의 저녁 초대.
이제 낯설게 소매를 스쳤던 마트에서
오늘은 함께 새로운 메뉴를 고른다.
다 안다는 듯 관심 없다는 듯 고향 대신
나의 취향을 당신이 물어보는 사이 나는 똑 딱 똑 딱
빛이 30만킬로를 달리는 1초.
소리가 340미터를 달리는 1초.
그리고 기억이 수십년을 달리는 1초만큼씩 멀어진다.
당신은 이미 사라진 빛 속에 남아
사라진 내 목소리를 듣고 있네.
사라진 이빨. 사라진 키스.
볕 좋은 치과에 모여 쌍둥이 뻐꾸기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전속력으로 관측되기 위해
수명을 다해 부풀어오르다가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들. 오천광년을 걸어 잠시 들른 이 별에서
끝없는 불꽃놀이로 꺼지지 못하는 사람들. 믿지 못하겠니, 우리는
잠들지 않는 냉동 수정란처럼 둥둥 탯줄을 끄는 해파리성운.
밤하늘에 목을 맨 모빌이 되어 수수만년
우리는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편지를 수거해 간 우편배달부는 버즈 두바이*에서 밤마다 참수당하고
진열대에는 저녁에 쓰일 햇반 같은 활자만 남아
쇼핑할 수 없는 엄마가 하나 둘 지나간다.
나는 쇼핑 카트에 잠들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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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즈 두바이: 아랍에미리트에 시공중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
* 창작과비평 140, 2008년 여름호,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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