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옥탑에서 책들 앞에 촘촘히 서서 살다가
책 뒤질 때 와르르 방바닥에 내리꽂힌 CD들
아 슈베르트 얼굴이나 이름이 적힌 판들.
이 한세상 살며 그래도 마음에 새길 것은
슈베르트, 고흐와 함께 보낸 시간에
새겨진 무늬들이라 생각하며 여태 견뎌왔는데.
껍질만 깨지지 않고 혹 속까지 상한 놈은 없는가
며칠 동안 깨진 사연을 하나씩 들어본다.
아니, 사연마저 깨진 맑음이다.
이틀 만에 듣는 폴리니가 두드리는 마지막 소나타는
맑음이 소리의 물결을 군데군데 지워
몇 번이나 건너뛰며 간신히 흘러간다.
뛸 때마다 마음도 건너뛰려다 간신히 멈춘다.
슈베르트여, 몸 뒤척이지 말라.
가만히 둘러보면 인간은 기실
간신히 깨지지 않고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시방 같은 봄 저녁
황혼이 어둠에 막 몸 내주기 전 어느 일순(一瞬)
홀린 듯 물기 맺힌 눈 아니고는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 꽃의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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