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달 안을 걷다 [김병호]

초록여신 2006. 6. 10. 22:30

 

 

 

 

 

 

 

 

 

 

 

 

내가 한 그루 은사시나무이었을 때

내 안에 머물던 눈 먼 새들

혓바늘 돋은 울음을 날렸다

울음은 발갛게 부풀어 둥근 달을 낳고

속잎새에만 골라 앉은 숫눈이

돌처럼 뜨겁게 떠올랐다

 

그믐 모양 흐르던 푸른 수맥의 흔적

그 사이로 비늘 떨군 물고기가

해질녘 주름진 빛과 몸 바꿔 흐를 때

내가 제일 나중에 지녔던 울음과

몸담아 흐른 기억마다에 피는 상여꽃

 

봄을 앓는 어머니가 누이의 머리채를 흔들고

꽃뱀이 누이의 다리를 휘감는다

한참 누이를 사랑하던 꽃뱀은

은사시나무로 다시 몸을 바꾸고

아버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으로 나가

허리를 꺾는다

어머니는 누이를 향해 자꾸만 손나비를 날리는데

검은 살의 물고기들이 달려와 은사시잎을 뜯는다

아버지는 자정의 종소리로 울리고

달빛 속의 눈이는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바람을 읽으면 별이 될 수 있을까

잎 큰 나무들이 바람을 모아

제 안에 나이테를 그려놓고

잎 떨군 나는,

눈 먼 새들의 울음을 모아 내 몸을 헹군다

 

 

 

 

 

 

 

 

 

* 달 안을 걷다 / 천년의시작, 200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