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나는......
김 상 미
친구야, 나는 너희들이 좋단다
문 가까이 귀를 너무 바짝 대지 마
때로는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마음 베일 때도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너희들의 지적 조심성으로
똑 똑 똑 두드리기만 해
그럼 나 문 열어줄게
문 안의 활력 다 보여줄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사시사철
뜨겁게 찻물 데워놓을게
우린 자꾸 나이들고
틀 속에 갇힐 때가 잦아지지
반쯤은 눈을 뜬 채
악몽을 꾸기도 하지
산발적인 쾌감을 때문에
아무 곳으로나 칼을 던지기도 하지
그러나 라일락 향기 밑이나
노랗게 은행나무 눈부시게 노래하는 길목에선
꼬옥 손을 잡지
숨지 마 돌아서지 마
당당히 당대의 핏줄답게
함께 걸어가자꾸나
나는 너희들이 좋단다
주머니 속에 꼭꼭 숨긴 은장도
나 빼앗지 않을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너희들의 앞가슴
절대 넘보지 않을게
나는 그냥 불만 지필게
아름답게 불꽃만 지펴올릴게
떠돌지 마 떠돌게 하지 마
내가 좋아하는 너희들 자유로운 부리로
톡톡 튀는 불씨
식탁으로 물어와
사람 사는 모습 그대로
수저를 들자꾸나
새와 바람이 다니는 남녘 창만 열어놓고
친구야, 나는 너희들이 좋단다
_《모자는 인간을 만든다》(문학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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