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나무
김 명 인
이 나무는 사막을 거쳐 온 여행자들이
잠깐 쉬었다 가는 자리
그늘을 깔아놓고 행려의 땀방울을 식혀준다
헤아릴 수 없는 순례의 길목이 되면서
뻗은 실가지도 어느새 우람한 팔뚝으로 차올랐지만
나무는, 여행자들이 내려놓는
들뜬 마음이나 고단한 한숨 소리로
사막 저쪽이 바람편인 듯 익숙해졌다
동이 트고 땅거미 져도 활짝 열린 사막의 창문
맞아들이고 떠나보낸 여행의 수만큼 나무는
세계의 전설로 그득해졌지만
잎을 틔워 초록을 펴고 시드는 잎차례로
낙엽까지 가보는 것이 유일한 해살이였다
언제나처럼 굴곡 겹친 사막의 날머리로
지친 듯 쓰러질 듯 한 사람이 멀리서 왔다
딱 하루만 폈다 지는 꽃의 넋과 만나려고
선연하게 둘러앉는 두레의 그늘, 석양이 지고 있다
창밖으로 보면 오늘의 여행자는 홀로 서서 고즈넉하고
나무 또한 그가 버리고 갈 길에는 무심하지만
펼쳐든 여정이라면 누구라도
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행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어제가 포개놓은 그늘에 서게 하는 걸까?
아직 행려의 계절 끝나지 않았다
어디로도 실어 보내지 못한 신생의 그리움 품고 나무의
늙은 가지에 앉아
몸통뿐인 새가 울고 있다
_《여행자 나무》(문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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