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기도
류 시 화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나는 기립근이 약해 잘 무너집니다.
나를 잡아주소서.
나는 가시 뿐 아니라 꽃에도 약합니다.
외로움에도 약하고 그리움에도 약합니다.
세상 속에 사는 것에도 약하고
세상을 등지는 것에도 약합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사랑에도 약하고
미움에도 뼈저리게 약합니다.
말주변 없는 없는 내 기도를 들어 주소서.
나는 저항하는 것에도 약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약합니다.
축복에도 약하고 저주에도 약합니다.
진실에도 거짓에도 약합니다.
내 얼굴이 나에게 낯설지 않도록
생의 저녁 나와 함께하소서.
내 심장은 혼자서도 이중창을 부릅니다.
절망과 희망이
용기와 두려움의 이부합창을
그러니 많은 해답을 가진자를 멀리하고
상처 입은 치유자와 걸어가게 하소서.
나는 혼자인것에도 약하고 함께인 것에도 약합니다.
손을 내미는 것에도 손을 거두는 것에도 약합니다.
다시 한번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나는 시작에도 약하고 끝에는 더 약합니다.
_《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 2022, 수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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