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병원으로 가는 길 [신현림]

초록여신 2022. 8. 23. 10:34


병원으로 가는 길
신 현 림







사는 게 병원가는 길은 아닐까. 나든 가족이든 번갈아 가며 병원 찾는 길.
푸른 안개가 펄럭이는 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당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한 기도밖에 없다. 뇌출혈을 멎게 해주시고, 새들이 떠메고 가는 아침을 보여주시고, 모든 후유증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맨살을 찢듯, 그대의 아픈 자리가 주는 우울과 공포. 몇 겹 파도를 일렁이며 덮쳐온다. 우리는 사랑보다 다툼이 더 많았고, 함께 가는 길이 꼭 끼는 바지처럼 버겁고, 함께 있고 싶은 만큼 벗어나고 싶었다.




'사랑은 결심'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그대 손을 잡고 봄의 산맥을 오르고 싶다. 그대 손에 연분홍 철쭉꽃이 피어오르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며, 함께 추스릴 시간, 깨어나 부활할 시간에.



_ <황해문화> 200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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