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생활이라는 감정의 궤도 [이병률]

초록여신 2017. 11. 7. 08:00


생활이라는 감정의 궤도

 이 병 률









그는 먹기 위해 집 안의 모니터를 통해 배달 사항을 전송한다

밥 100그램과 채소와 달걀 요리다

그의 직업은 생활인이다



도시 중앙센터의 식당에서 일을 하는 구역 요리사는

많은 주문 가운데서도 그의 주문을 비중 있게 다룬다

단 한 번의 얼굴을 본 적 없는 두 사람의 소통의 정도는

관상어가 먹고 배설하는 일 따위에 불과하겠지만

요리사는 어쩐지 그의 주문을 위해서만 일을 하는 사람 같다



건조한 주문이 있고

하나의 온기 없이 따뜻한 음식이 회전벨트에 실려 배달된다



기다린다 이제 밥을 기다리는 일과

주문을 기다리는 감정의 경중은 같다

어느 날부터였다. 그가 먹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요리사는 며칠째 주문을 받지 못했으므로

어쩐지 중요한 일이 없어져버렸다



그가 먹는 음식으로 그를 상상하거나 읽어보려 했으나

그에 대해 아는 한 가지는

일인분의 한 사람이라는 것



그는 곧 도시를 떠나겠지만

어떻게든 도시는 도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며

회전벨트를 타고 이 도시를 떠났던 모두처럼

누군가를 스스로에게 연결짓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것



도시는 빛이 많으니까 스스로의 빛도 필요하다

바깥 불빛보다 안쪽의 불빛에 의지해야 하므로

감정도 필요하다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 감정은 한 방향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스스로의 힘을 모은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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