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서랍 이 병 률 터미널에서 스친 한 노인이 한 손에는 약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들고 마음이 아파서인지 몸을 반쯤 접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순수하게 했는데, 나한테 이러믄 안 되지 나는 마음의 2층에다 그 소리를 들인다 어제도 그제도 그런 소리들을 모아 놓느라 나의 2층은 무겁다 내 옆을 흘러가는 사람의 귀한 말들을 모으되 마음의 1층에 흘러들지 않게 하는 일 그 마음의 1층과 2층을 합쳐 나 어떻게든 사람이 되려는 건 사람의 집을 지으려는 것 나의 마련은 그렇다 한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은 한 사람이 깊숙이 칼에 찔리는 것은 지구가 상처받는 것 지구의 뼈가 발리고 마는 것 지구 뿌리에 빗물 전해지듯 당신들이 이 지구에 귀함을 보탤 거라면 나의 완성은 그렇다 지구 사람 가운데 나에게 연(緣)이 하나 있다면 당신들의 흩어짐을 막는 것 지금은 다만 내 마음의 1층과 2층을 더디게 터서 언제쯤 나는 귀한 사람이 되려는지 지켜보자는 것 나의 궁리는 그렇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지,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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