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배경
허 연
마을에 바람이 심하다는 건, 또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밀밭의 밀대들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언덕 위 백 년 넘은 나무 하나가 흔들리는 밀밭을 쳐다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김없는 일이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기도 하다. 흙먼지 일으키며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 밀밭 사이를 뛰어다닌다. 아이들도 안다. 바람을 굳이 피하지 않는 법을. 마을은 죽음과 친하고 죽음이 편하다. 죽음의 배경, 그것으로 족한 마을에 오늘도 바람이 분다.
*내가 원하는 천사(문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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