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바람 박물관 [손현숙]

초록여신 2014. 3. 4. 09:16

 

바람 박물관

 손 현 숙

 

 

 

 

 

 

 

 

나무판과 나무판 사이 그 간극 위에

각 없는 지붕 하나 달랑 올렸다

헛것으로 채워진 헛간

문 없는 문 속으로 발 들이민다

조각조각 틈새로 스미는

빛의 잔상, 몸 없는 몸들이 쏟아진다

눈 감고도 환한 집

 

 

자명한 대답 속에 서있는 듯

무채색의 덩어리 한 채

바람은 우연히 제 몸집 부풀린다

빛과 어둠으로 얼룩진 바닥

제 목청껏 우는 울음소리에

바람은 앞뒤 없이 바람을 불러온다

 

 

그 바람에 하늘과 땅 비스듬히 섞일 때

꽃 한 송이 길 없이도 길을 연다

이 길 유유히 통과하는 동안이면

육신은 잿빛으로 반짝반짝 가벼워도 좋겠다

 

 

누구나 잠시 빌려 입는 바람의 말

평생을 이어놓은 긴 질문처럼

나는 지금 세상에 없는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오는 중

백년을 걸어서 하루를 통과하는

여기, 앉아서 평생을 탕진해도 좋겠다

 

<<유심>> 5월호

 

 

*좋은 시 2014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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