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박물관
손 현 숙
나무판과 나무판 사이 그 간극 위에
각 없는 지붕 하나 달랑 올렸다
헛것으로 채워진 헛간
문 없는 문 속으로 발 들이민다
조각조각 틈새로 스미는
빛의 잔상, 몸 없는 몸들이 쏟아진다
눈 감고도 환한 집
자명한 대답 속에 서있는 듯
무채색의 덩어리 한 채
바람은 우연히 제 몸집 부풀린다
빛과 어둠으로 얼룩진 바닥
제 목청껏 우는 울음소리에
바람은 앞뒤 없이 바람을 불러온다
그 바람에 하늘과 땅 비스듬히 섞일 때
꽃 한 송이 길 없이도 길을 연다
이 길 유유히 통과하는 동안이면
육신은 잿빛으로 반짝반짝 가벼워도 좋겠다
누구나 잠시 빌려 입는 바람의 말
평생을 이어놓은 긴 질문처럼
나는 지금 세상에 없는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오는 중
백년을 걸어서 하루를 통과하는
여기, 앉아서 평생을 탕진해도 좋겠다
<<유심>> 5월호
*좋은 시 2014 /삶과 꿈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치 끝 [박주택] (0) | 2014.03.04 |
---|---|
섬 [윤제림] (0) | 2014.03.04 |
단단한 말 [홍정순] (0) | 2014.01.09 |
우편 1 [장이지] (0) | 2014.01.09 |
마음은 그래픽 [장이지] (0) | 2014.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