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이 영 광
슬픔은 도적처럼 다녀간다
잡을 수가 없다
몸이 끓인 불,
울음이 목을 꽉 눌러 터뜨리려 하면
어디론가 빠져 달아나버린다
뒤늦은 몸이 한참을 젖다 시든다
슬픔은 눈에 비친 것보다는 늘
더 가까이 있지만,
깨질 듯 오래 웃고 난 다음이나
까맣게 저를 잊은 어느 황혼,
방심한 고요의 끝물에도
눈가에 슬쩍 눈물을 묻혀두고는
어느 결에 사라지고 없다
슬픔이 와서 하는 일이란 겨우
울음에서 소리를 훔쳐내는 일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2013)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습격 [천서봉] (0) | 2013.10.12 |
---|---|
눈사람 여관 [이병률] (0) | 2013.10.10 |
투명 [이영광] (0) | 2013.09.24 |
의자의 교감 [허만하] (0) | 2013.09.24 |
별이 내리는 터전 [허만하] (0) | 2013.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