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슬픔 [이영광]

초록여신 2013. 9. 24. 08:55

슬픔

 이 영 광

 

 

 

 

 

 

 

슬픔은 도적처럼 다녀간다

잡을 수가 없다

몸이 끓인 불,

울음이 목을 꽉 눌러 터뜨리려 하면

어디론가 빠져 달아나버린다

뒤늦은 몸이 한참을 젖다 시든다

슬픔은 눈에 비친 것보다는 늘

더 가까이 있지만,

깨질 듯 오래 웃고 난 다음이나

까맣게 저를 잊은 어느 황혼,

방심한 고요의 끝물에도

눈가에 슬쩍 눈물을 묻혀두고는

어느 결에 사라지고 없다

슬픔이 와서 하는 일이란 겨우

울음에서 소리를 훔쳐내는 일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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