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내리는 터전
허 만 하
별빛 고운 생일날 밤, 소년은 활을 들고 초원에 나선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떠난 화살이 겨누는 것은 밤하늘의 별이다. 초원 너머 펼쳐지는 사막의 모래알만큼 수가 많은 별들. 화살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화살을 맞은 별은 한줄기 파란 꼬리를 흘리며 홀연히 하늘에서 사라진다. 소년은 자기가 겨누는 것이 별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운명이란 사실을 알리 없을 만큼 어렸다.
언젠가는 가슴 밑바닥에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 때문에 눈시울이 왈칵 뜨거워지고, 하늘 가득히 뿌려져 있는 별이 물기를 머금고 안개 너머 바라보는 세상처럼 흐려 보이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소년은 청순했다. 그때만 해도 활을 잡은 소년은 푸른 꼬리를 달고 하늘을 떠나는 별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의 소년은 오늘도 초원에 나선다. 화살을 맞아 땅에 떨어졌을 별 부스러기를 찾아, 풀 그늘을 뒤지는 것이다. 보라색 풀 그늘에서 반딧불처럼 깜박이고 있을 자신의 별 조각을 어루만지며 그 계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아침 이슬 반짝이는 초원을 야생의 망아지처럼 혼자서 밟는 것이다.
*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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