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눈사람 여관 [이병률]

초록여신 2013. 10. 10. 12:41

 

눈사람 여관

 이 병 률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

 

 

밥은 더러운 것인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숙박을 가요

 

 

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

여관에서 만나요

 

 

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내가 껴안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지요

길 건너편 숲조차도 사라지지요

 

등 맞대고 그물을 당기면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여관이겠어요

 

 

내 당신이 그런 것처럼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

 

 

* 눈사람 여관 / 문학과 지성사, 2013.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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