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이라는 제목
김 충 규
당신 살결에서 맨홀 냄새가 나요
맨홀 속에 죽은 나비들이 바글바글
길이 되지 못해 질주하는 강이
질주하지 않으면 썩어버리는 강이
당신의 등뒤에 수북이 쌓입니다
강물로 당신의 살결을 내가 씻어줄 것 같나요
그냥 등돌릴 것 같나요 맨홀 속에 가득한 죽은 나비들 중에
아직 살아 있는 나비가 있을까요
그게 질문인가요? 라는 표정으로 당신은 무심히
나를 멸시합니다 말없는 표정만의 멸시가
얼마나 후끈거리는지 당신은 모르는 듯합니다
당신을 벽화로 제작하는 상상을 합니다
생생한 벽화를 보려고 몰려올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아도 될까요? 이것만은 당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싶습니다
벽화에서도 맨홀 냄새가 나면 어쩌지요
맨홀 속에서 일생을 살았다는 사내를 압니다
그 사내는 죽은 나비를 먹고 연명했다고 합니다
그 사내가 나인지도 모릅니다 내 최종 목표는
당신을 강이 아닌 맨홀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용서하세요 당신 살결의 맨홀 냄새를 씻어드릴게요
아닙니다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못 됩니다
당신을 강으로 밀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내 속에 죽은 나비가 바글바글하니까요
그 사내가 나인지는 정말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발언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만 씻으러 강에 가겠습니다
*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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