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도덕성
김 륭
밥 온다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밥그릇 가지고 공갈치지 말라고 퉁퉁 불어터지는 짜장면과 짬뽕의 자유분방한 슬픔에 대해 짜장면을 시키면 짬뽕이 먹고 싶고 짬뽕을 시키면 짜장면이 먹고 싶은 거짓 없는 사랑에 대해 질질 침 흘리지 말라며
쥐뿔도 개뿔도 없이 방귀 뀌지 말라고 가끔씩 프라이팬을 들고 설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바퀴벌레 들끓는 동네 허름한 중국집까지 법보다 발 빠른 밥이 굴러온다 밤에도 하얗게 와서 개똥참외처럼 무르익은 낯빛을 밝혀준다 해와 달에 양다리 걸친 애인을 위해
밥은 여기저기 개밥그릇처럼 뒹구는 얼굴을 화장실 변기 위에 평등하게 앉혀놓는다
오늘은 볶음밥이 왔다 남이 먹다 남긴 밥이 나를 모시러 왔다 나이가 몇 살인데 밥값도 못하고 사냐고 밥이 선택하는 것은 당신의 주머니 사정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고 뜨겁게 살을 건다 눈물 콧물 빠트려 장난치지 말라며 사람을 볶는다 들들
들들 볶아댄다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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