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박 주 하
지금 이 도시의 가을비는
온갖 망명설에 휩싸여 있어요
내장을 다 녹여버린 술잔들은
정처 없는 건조함에 화가 났으며
사방으로 흩어진 길조차
용수철처럼 튕겨 오르는 밤이지요
날마다 서로에게 반송되고
어쩌다 찾아간 옛집 또한 울음주머니만 무성하니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누가 그대들의 따스한 욕조를 이 거리에 바쳤나요
증거 없는 슬픔 속을 헤매며 길을 걷고
길가에 버려진 저울 위에 앉아
지워지는 밤의 무게를 재어봅니다
도시의 흉곽을 가르며 차가워지는
재빠른 갈퀴손들의 속도 또한
비가 와도 젖지 못하는
백 킬로그램의 가혹한 외로움
혹은 알리바이 없는 숫자 제로가
우리의 마지막 질량이라니
버려진 기억의 창백한 얼굴이군요
바람처럼 걸림 없이
이미 숱한 죽음을 산출해버린
냉담한 무게의 허공만
메마른 이 도시의 등불을 받들고 있군요
* 숨은 연못(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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