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포도밭 [안도현]

초록여신 2012. 8. 9. 13:49

 

포도밭

안 도 현

 

 

 

 

 

 

 

 

 

눈발 속을 기어가는 저 포도 줄기들,

마른 덩굴손 꼭 감아쥔 채 떼어내지 못하고

포도시 앞으로 배를 밀고 나아가는

저 허공의 포복,

더듬더듬 포도밭을 건너가는

저 줄기들이 맹인이라면

이곳은 눈 내리는 맹청(盲廳)이겠다

발자국도 없이 두런두런 모여

꿈틀거리는 포도 줄기들,

나는 맹인들이 일으키는 해일을 안다

검은 눈망울의 폭풍우가

포도밭 너머 전국 곳곳으로

번지게 되는 날을 안다

 

 

 

* 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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