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열꽃 공희 [김규린]

초록여신 2011. 3. 28. 23:31

 

 

 

 

 

 

 

 

 

 

여태 들꽃으로 살았어도

들녘의 귀퉁이 한 자락 움켜쥐지 못했으니

그래, 이건 너무한 거다

배로 기어온 길바닥 위에

달팽이 진액 흘리듯 끈적한 내장 쏟아낸 시절은

온전히 쓰라렸는가

번들거리는 살의처럼 타들어가는 야생잎들이

주위를 빙 둘러 피었다 서둘러 지고

나는 떨치지 못한 열독에 싸여

간혹 바람개비로 바다를 건지는 꿈을 꾸었다

스스로 짊어진 불더미를 고봉밥으로 떠서

꾸역꾸역 목구멍에 밀어넣을 때

생각했다 가끔 널

살해하고 싶었지만, 나

사랑이었을지 몰라 너 없인

불에 젖을 수가

 

 

가장 아름다운 꽃잎만 기르고 싶었던 공중 화단에

주르륵 뿌리들이 번져 흘렀다

피지처럼 구겨진 가슴을 찢고

쓰라리게 시 하나가ㅡ

 

 

* 열꽃 공희 / 천년의 시작, 201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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