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유년을 추억함 [김규린]

초록여신 2011. 3. 28. 23:27

 

 

 

 

 

 

 

 

1

기억도 중독되는 거야

아버지 원리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우울을 가득 넣은 끈이 긴 가방처럼

어깨에 매여 있던 영상들

잠시 그것들 내려놓으면

어깨가 홀가분하고

또 무거워지곤 했다

사는 일이란

빌려 쓰는 비닐우산 한 장일 따름이라고

당신의 우산 속에 많은 것들을 들여보내고

밀려나 비 맞던 아버지

당신 것이었으되

한 번도 그것으로 비를 피하지 못했던

그가 어루만져 만질만질해진 빗줄기들은

구석기 유물처럼

형식만 남아 경이롭게 내 앞에

진열되곤 했다

 

 

2

섬 같은 우산

우산 같은 섬

섬이야 자신을 우산이라 여겨도 무방하지만

공연한 원리는 그래도

우산은 우산일 뿐이라고 말한다

고작 우산 하나에 지나지 않는 한 생애가

때로 섬처럼 사뿐 떠 흐르다가는

공연히 내 가슴팍에 날카롭게 박혀

명치를 쥐어뜯곤

하였다

 

 

* 열꽃 공희 / 천년의 시작, 201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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