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고무나무는 죽었다, 그 나무를 살리지 못한 자책감이 나무를 버리지 못해서 베란다 한구석 소철 화분 옆에 옮겼다 고무나무가 시들기 시작한 이후 몇몇 꽃집에 전화를 넣었지만 한결같이 숨을 쉬지 못해 그럴 거요, 한다 나는 결코 고무나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사과나무 같은 부드러운 살결을 지니고 있었지만 오랜 나무가 지닌 목질의 깊이는 없었다 더욱이 고무라는 어감! 그 어린 열대 식물은 아파트의 공기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잎이 누렇게 뜨면서 나무는 살결마저 검게 변해갔다 그 나무를 통해 내가 꿈꿀 수 있는 인도차이나는 없었다 먼저 아이들이 못 견뎌했다 새벽이면 잠깐 생기를 찾는 듯했으나 퇴근 무렵이면 어김없이 잎들이 졌다 그 나무가 완전히 죽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어느 날 나무를 흔드니 남은 잎들이 남김없이 떨어졌다 버쩍 갈라진 고무나무 근처 봄이 시작되고 식구들은 소철의 부쩍 커가는 잎을 즐거워했다 어머니가 죽은 나무 아래 망개를 심었다
몇 달이 지나 여러 화분 틈에서 그 나무는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인다 망개 덩굴이 치렁치렁 감고 올라간 고무나무는 푸른 잎과 푸른 빛을 내뿜는다 흰 살결에 덩굴 흔적이 제대로 패이고 오래 전부터 망개 덩굴을 위해 잎을 모두 털어버리고 몸을 바꾼 것처럼 여겨지는…… 어쩌면 그 나무는 예쁜 망개 열매를 떨어뜨릴 수 있으리라
* 푸른 빛과 싸우다, 문지(1994)
…
수술까지 해서 살려보고자 했던 우리집 초록이(이구아나)가 결국은 기대를 저버리고 떠나갔습니다.
uvb램프에 돌히터까지 설치해주었건만 결국 우리와의 인연을 매정하게 정리해버리더군요.
여름에 베란다에서 자유를 누릴 때 더 잘 해줄 걸... 하면서 뼈아픈 후회를 해보았지만...
미안함 뿐이더군요. 수술 후 25일이 경과했지만 아직 수술한 실도 제거해주지 못해서 더욱 마음이 짜안 했습니다.
무지 춥던 날, 경찰서 정문 아파트 화단의 가장 따뜻한 곳에 묻어주었지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 이런 이별의식도 동반해야 함을 절실히 느꼈답니다.
누구의 집에서는 10년도 훨씬 넘기고도 잘 살아있다는데...우리집에서는 400일 남짓 살아주었더랬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었었기에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지난 15일에 떠난 우리 초록이도 별을 찾아 몸을 별로 바꾸었겠지요. 저 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세는 아해의 순수한 눈동자를 보니 더욱 빈 자리가 느껴지네요.
따뜻한 봄이 오면 그곳에 개나리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우리 초록이가 꽃을 찾아 몸을 꽃으로 바꾸는 이야기가 완성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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