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손금처럼 화창한 날에
나는 죽은 듯이 자는구나
사방 죽지 않은 것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식물의 잠처럼
검고 딱딱하게 자는구나
나의 손톱은 밤새 몰래몰래 가시처럼 자라고
피들은 숨결을 타고 허공중으로 덩굴처럼 번지는데
나의 가족들은
멀리서 서로의 발등을 닦아주는데
나는 죽은 듯이 자는구나
죽지 않기 위해 죽은 듯이 머리를 꿈결 속에 풀어 헤치고
얌전한 햇살처럼
볼 가득 미소를 드리우고 비밀이 아닌 것이 없는
이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나는 죽은 듯이 자는 척하는구나
무릎을 턱아래 포개어 대고
나는 왜 죽은 듯이 자는 척해야 하는가
왜 나만 죽어라 하고 잠을 자야 하는가
나는 잠을 자면서도
죽을 듯이 질문을 해대는구나
검고 단단한 눈꺼풀들이 잎처럼 떨어져 내려도
나의 잠을
이 비겁한 잠을
사방이 비웃는
이 잠을
깨울 수 없으니
나는 자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죽었구나
어느 먼 도시의 식탁아래
얻어맞은 소년처럼 칭얼대며 자는구나
너희들이 잠들 때까지
죽은 듯이
이렇게 귓불처럼 다정한 날에
*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 / 문학과 지성사, 2010.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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