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자가 분석가 [김점용]

초록여신 2010. 11. 7. 19:47

 

 

 

 

 

 

 

 

 

 

 나는 그에게 매일 꿈을 가져간다 하루에 열두 개를 가져간 적도 있다 거래는 공평하다 그는 내 꿈에 관심이 많고 나는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 분석에서 그는 주로 연상 기법에 의존한다 이를테면 뱀으로 줄넘기 할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머리가 둘 달린 아이는 누구를 떠올리게 했죠 이런 식이다 호프집에서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모래 그림의 미로를 헤매는 성인식의 주인공 같다 귀엽고 우습다 난 대체로 솔직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으면 거꾸로 말할 때도 있다

 

 

 최근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꿈을 쓱 훑어보고는 책상 한구석에 밀쳐놓더니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왜 만난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습관이라고 하마터면 난 솔직하게 대답할 뻔했다 오늘 난 두 개의 꿈을 와이셔츠 상자에 담아 빨간 보자기에 싸서 가져갔다 그는 자동차 시동을 건 채 왜 이랬는지 물었다 난 마지못한 듯 꿈에 꿈에 신당인지 암자인지 모를 곳에 이렇게 갖다 바쳤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아무 말없이 액셀레이터를 천천히 밟았다 내가 그에게 주의를 줄 수 있는 방법은 그 길밖에 없었다

 

 

* 메롱메롱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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