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가을의 빛 [장석남]

초록여신 2010. 9. 1. 21:45

 

 

 

 

 

 

 

 

 

 

 

누군가 울먹이며 지나갔는가

일개 소대의 코스모스들이 허리마다 올올이 바람을 감고 서서

이제 더 오래 못 서 있을 빛을 내내

빛내고 있었으니

이 빛깔들은 이후 어느 길목을 돌아

어디로 종종이며 흐를 것인가

 

 

그것이 눈물겨운 것은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밥을 끓이고 있는

추억의 이마가 너무 푸르러서만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종내는 혼자서 저렇게 허리에 바람을 감는 길이라는

이 가을 속 조용한 손님의 말씀이 있었으니

 

 

누군가 엉엉 울고 갈 이가 있어서

또 그가 손목을 만지작거이며 걸리는

작은 새끼들의 울음도 있어서

낮에 나온 달이 저렇듯 오랫동안 창백하게

이 근처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두커니 오동나무도 한 주 서 있는 것은 아닌가

 

 

 

 

 

* 젖은 눈, 문학동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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