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세상에
살구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복숭아꽃이 피었다가 졌다고 쓰고
꽃이 만들던 그 섭섭한 그늘 자리엔
야윈 햇살이 들다가 만다고 쓰고
꽃 진 자리마다엔 또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살구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복숭아가 달렸다고 써야 할까
그러니까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써야 할까
내 마음속에서
진 꽃자리엔
무엇이 있다고 써야 할까
다만
흘러가는 구름이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달이 뜨면
누군가 아이를 갖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할 뿐이라고
그대로 써야 할까
2
꽃 진 자리에 나는
한 꽃 진 사람을 보내어
내게 편지를 쓰게 하네
다만
흘러가는 구름이 잘 보이고
잎을 흔드는 바람이 가끔 오고
그 바람에
뺨을 기대보기도 한다고
나는 오지도 않는 그 편지를
오래도록 앉아서
꽃 진 자리마다
애기들 눈동자를 읽듯
읽어내고 있네
* 젖은 눈 / 문학동네, 2009. 4. 20 (개정판)
自序
오,
저 물 위를 건너가는 물결들
처럼,
서른넷, 初
장석남
...
개정판을 내며
십여 년 전 냈던 시집을 다시 내게 된다.
아주 없어지는 것이 조금은 섭섭했던 모양이다.
몇 작품에서 문장 몇 줄을 지웠는데 두어 작품은 다 지워졌다.
다시 본다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또렷이 보인다는 것.
얼른 덮었으니 망정이지 남는 것 있었을까 싶다. 허나
문장을 남김으로써 스스로를 지우는 방식이 문학이 아니겠는가.
마저 지우는 공부가 계속될 뿐이겠다.
마흔다섯, 初
장석남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에 넣어 띄운 소식 [박형준] (0) | 2010.09.04 |
---|---|
가을의 빛 [장석남] (0) | 2010.09.01 |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박형준] (0) | 2010.09.01 |
한라수목원에서 [이대흠] (0) | 2010.08.31 |
나의 한때는 푸르렀다 [장석주] (0) | 2010.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