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일어서, 건담 [서효인]

초록여신 2010. 7. 7. 22:24

 

 

 

 

 

 

 

 

 

 

 높은 천장과 깨끗한 조도를 가진 우주.

 건담은 평화를 사랑한다. 거대한 서사의 시작은 늘 명징한 평화.

 

 

 휴먼은 우주의 항로를 돈다. 조화롭게 진열된 별들을 우주선에 담는다. 무수한 별들의 쓰임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 그들은 혼돈을 즐긴다. 휴먼의 입맛에 맞게 가공된 숱한 은하들의 노선이 입맛대로 흐트러진다. 별들의 질서를 바로잡는 건담.

 

 

 덜 큰 휴먼을 우주선에 태우고, 엉덩이와 사타구니 사이에 신성한 별을 담는 진정한 야만성. 전범국 후예의 무심한 표정은 참을 수 없이 밥맛이지만,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진 나선형의 행복에 건담은 끼어들 자격이 없다. 우주선에 두고 간 내밀한 기록을 지우는 건담.

 

 

 안드로메다 성운의 지하자원에서는 늘 고소한 냄새가 난다. 우주의 복판으로 성난 이쑤시개처럼 휴먼들은 달려든다. 우주는 영영 고갈되지 않을 자원의 보고이고 천장은 높고 조도는 깨끗하다. 권유하기에 쉬운 크기를 개발하기 위해 골몰한다. 너무 크거나 작은 차원은 분쟁을 일으키므로, 잘 드는 가위를 집는 건담.

 

 

 영원의 구멍을 향해 휴먼은 우주를 몬다. 바코드-홍에서 녹색 광선검을 투과하면 별들의 신비는 해체된다. 행성의 표면이 긁히는 소리가 사납다. 휴먼, 3개월로 긁을 건가. 휴먼, 한 번에 할 건가. 휴먼, 비밀을 쌓을 텐가. 휴먼, 적립할 다른 비밀은 없는가. 빠른 손놀림의 건담.

 

 

 광활하고 신비한 우주에서 봉지에 별을 담는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할 일. 썩지 않는 물질이 허공을 떠돈다. 봉지가 무겁다. 건담은 거대한 평화에 눌려 종아리가 붓고 발바닥이 딱딱하다. 어쨌든,

 

 

 우주의 서사에서

 건담은 늘

 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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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효인

 198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현재 '작란(作亂)'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 소년파르티잔 행동 지침 / 민음사, 2010. 5. 31.

 

 

……

2010년 건담 엑스포가 코엑스에서 열린답니다.(7. 21.~ 7. 25.)

'건담'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21일과 22일은 무료입장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유료입장이고요.

저도 이 시를 프린트해서 다녀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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