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육년 동안 구멍가게의 주인이었던 어머니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하시며
따로 나가 사는 아들을 위해 따로 챙겨둔 물건을 건네신다
검은 봉지 속에는
칫솔 네 개
행주 네 장
때수건 한 장
구운 김 한 봉지
치르려 해도 값을 치를 수 없는 검은 봉지를 들고
흔들흔들 밤길을 걸었다
문 닫힌 가게 때문에 더 어두워진 거리는
이 빠진 자리처럼 검었다
검은 봉지가 무릎께를 스칠 때마다 검은 물이 스몄다
그늘이건 볕이건 허름하게나마 구멍 속에서 비벼진 시절이 가고
내 구멍가게의 주인공들에게서
마지막인 듯
터질 것처럼
구멍의 파편들이 가득 든 검은 봉지를 받았다
* 바람의 사생활, 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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