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기억한다 [유수연]

초록여신 2010. 7. 2. 20:41

 

기억한다

ㅡ개기일식 2

 

 

 

 

 

 

 

 

 

 

 기억한다 내 손이 만지던 일을, 그의 일상을 만지는 촉촉한 감촉, 살갗을 쓰다듬는다 정오의 흰 햇빛이 손끝에서 발끝으로 꽂힌다 나는 자주 그의 영토에 꽂혀 있곤 했다 본체의 손끝에 지울 수 없는 칩으로 내장된다 지울 수 없는 칩, 손의 기억으로 새겨졌다

 

 

 기억은 컴퓨터 화면 같은 하늘에 떠 있다 대낮의 잠이라고 생각했다 잠 속에서는 범람하는 욕망과 융기하는 세간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기억의 지문 속에 길들이 도망치고 있다 그의 몸을 만지던 길들이 지워진다 은행나무 노랗게 깔린, 산모퉁이 당단풍나무 숲으로 난 길이, 붉게 타오르는 숲이 낸 길이 지워지고 있다 형태가 사라진 빛, 안이 어둡다

 

 

 몸을 잃은 것들의 어둠, 경계도 없이 암울한 하늘에 사라진 해로 내가 떠 있다 몸을 잃은 나를 만지지 못할 것이다 몸을 잃은 내 손도 그를 만지지 못할 것이다

 

 

 

 

* 치자꽃 심장을 그대에게 주었네, 천년의 시작(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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