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물길 [이정록]

초록여신 2010. 7. 2. 09:44

 

 

 

 

 

 

 

 

 

 

 

식구라는 그릇에

찰람거리는 물의 총량은 같다

 

 

손자녀석이 턱받이를 걷어내자

설암에 걸린 할아버지가 침 질질 흘린다

물줄기가 원자력병원까지 번진 것이다

 

 

감나무 아래 머위잎이 눈물 받는다

엄니가 매일 이마를 짚는 감나무

그 손자국 높이가 낮아진다, 해마다

감나무는 크고 엄니는 가라앉는다

 

 

활(活)이란 글자를 들여다본다

혀가 젖어 있어야만 먹을 수 있다 살아갈 수 있다

수저통 속 수저들처럼 물기를 놓지 말아야 한다

새벽 일찍 고향 쪽으로 큰절 올린다

꿈자리에 아버지의 채찍이 다녀가신 것이다

태반에서 빠져나간 물줄기는 어디로 갔나

 

 

전선마다 맺혀 있는 물방울들, 뚜두두두

이웃집 인삼밭으로 일 나간다, 하신다

인삼이 좋긴 좋은가보더라 게서 일하고 오면

몸이 가뿐하더라, 하신다 주인 몰래 많이 주워먹었더니

목이 탄다, 하신다 잔뿌리 주워와서 인삼김치 담가놨으니

가져가라, 하신다

 

 

머위잎이 전화기 밖으로 푸른 손을 내민다

정화수가 내 눈자위로 엎질러진다

물줄기가 이쪽으로 다 쏠렸으니 한동안 가물겠다

콩 이파리들 신작로 아래로 축축 늘어지겠다

 

 

인삼김치는 오래되면 깔깔하다, 하신다

잔대처럼 마루다가 팍 물러져서

아예 못 먹게 된다, 하신다

 

 

듣고 있냐 내 말 듣고 있냐 얘가 왜

말이 없댜, 전화가 끊긴다

 

 

 

* 정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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