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라는 그릇에
찰람거리는 물의 총량은 같다
손자녀석이 턱받이를 걷어내자
설암에 걸린 할아버지가 침 질질 흘린다
물줄기가 원자력병원까지 번진 것이다
감나무 아래 머위잎이 눈물 받는다
엄니가 매일 이마를 짚는 감나무
그 손자국 높이가 낮아진다, 해마다
감나무는 크고 엄니는 가라앉는다
활(活)이란 글자를 들여다본다
혀가 젖어 있어야만 먹을 수 있다 살아갈 수 있다
수저통 속 수저들처럼 물기를 놓지 말아야 한다
새벽 일찍 고향 쪽으로 큰절 올린다
꿈자리에 아버지의 채찍이 다녀가신 것이다
태반에서 빠져나간 물줄기는 어디로 갔나
전선마다 맺혀 있는 물방울들, 뚜두두두
이웃집 인삼밭으로 일 나간다, 하신다
인삼이 좋긴 좋은가보더라 게서 일하고 오면
몸이 가뿐하더라, 하신다 주인 몰래 많이 주워먹었더니
목이 탄다, 하신다 잔뿌리 주워와서 인삼김치 담가놨으니
가져가라, 하신다
머위잎이 전화기 밖으로 푸른 손을 내민다
정화수가 내 눈자위로 엎질러진다
물줄기가 이쪽으로 다 쏠렸으니 한동안 가물겠다
콩 이파리들 신작로 아래로 축축 늘어지겠다
인삼김치는 오래되면 깔깔하다, 하신다
잔대처럼 마루다가 팍 물러져서
아예 못 먹게 된다, 하신다
듣고 있냐 내 말 듣고 있냐 얘가 왜
말이 없댜, 전화가 끊긴다
* 정말,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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